오랜만에 서울아트시네마 방문. <베니스에서의 죽음> 정도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그 유명세만으로도 왠지 많이 본 것 같은 감독 중 한 명인 루키노 비스콘티의 특별전이 있어서, 마지막 날 겨우 짬을 내어 다녀왔다. 장장 238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그리고 중간에 인터미션도 없는 <루드비히 Ludwig>가 오늘의 선택 작품이었다. 사실 <센소>를 보고 싶었는데 시간도 안 맞고 - 하지만 그 시간에 있었어야 할 약속은 취소됐음;; 뭐야;; - 겨우 한 작품밖에 못 건졌다. 하지만 그 작품이 목까지 차오르는 만족감을 주었으니 됐다.

유럽여행 때 독일에서는 겨우 이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지나갔는데, 그 때 잠깐 들렀던 곳이 노이반슈타인 성이었다. 신백조의 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2세가 사치스럽게 지었지만 자신은 결국 그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루드비히 2세의 이름을 들었었다. 그리고 얄미운 천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그너의 일생에서, 폰 뷜로와 함께 빠지지 않는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예술을 사랑하고 환상을 좇던, 바그너의 작품 속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묶여 있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다 못해 과대망상 정신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루드비히 2세의 일생을 차분히 그려낸다.

홍안의 젊은 왕은 눈이 부시다 못해 황당하게까지 느껴지는 화려한 대관식을 거쳐 왕위에 오른다. 보석이 주는 위압감과 권력의 힘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던, 모후의 등장 장면에서는 얼굴을 가릴 정도로 목과 어깨, 머리를 장식한 큼지막한 보석들이 번쩍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윤기 흐르는 거대한 망토와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왕관, 가슴께에 걸린 휘장과 보석.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대관식 전에 술을 연거푸 들이키는 루드비히 2세의 모습에서 이미 그의 비극은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생의 사랑이었던 엘리자베스에게 배신당하고 - 그러나 사실 루드비히는 동성애 성향이 강했으며, 그것때문에 신께 기도를 올리며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사랑에의 환상을 쫓듯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촌누이에의 연정을 불태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마음에 답해주지 않고, 그녀의 동생을 홧김에 왕후로 맞으려 하지만 중도에 파혼까지 한다. 나중에 그를 찾아 온 엘리자베스였지만 이미 그녀를 만나기에는 너무나 많이 망가져 있던 루드비히는 그녀를 돌려보낸다. 어쩌면 엘리자베스는 루드비히에게 있어서 현실적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예술과 같은 하나의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면장면마다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어지러운 것은 확실히 초중반부가 더 심하다. 예술과 미에 대한 감독의 집요함이 느껴지는 궁정과 뜰, 숲의 장면에서는 그냥 입을 헤벌리고 봤다. 멋진 장면을 캡처(?)한다면 끝도 없이 프린트스크린 버튼을 누르고 있게 될 것 같은 장면들이 끝도 없이 지나가서, 눈으로 먹는 진수성찬을 받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비스콘티 감독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지만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렇게도 다들 미인들인지- 게다가 역시 또 감독 특성상(?) 아름다운 남자가 많이 나오다 보니 더욱 눈의 즐거움이 풍요롭다. 와핫. 주인공이자 비스콘티 감독의 연인이었던 헬무트 버거는 말할 것도 없고 - 조니 뎁과 올랜도 블룸, 알랭 들롱을 섞어 놓은 마스크를 가졌다 - 로미 슈나이더를 비롯해 시종과 시동 역을 맡은 배우들까지 모두 그린듯이 아름다워서 작품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했으며 전쟁을 혐오하고 예술을 숭상하던 루드비히는 작품 내에서 두어번,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강한 반박을 당한다. 친우인 뒤르케하임 대령은 그가 원하는 자유란 불가능한 것이며 현실 속에서의 '평범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결정했던 소피와의 약혼을 파기하려는 루드비히를 비난하면서, 호프만 신부는 왕이라는 그의 위치를 되새겨주며 국민, 즉 일반인에게서 유리되려 하는 루드비히를 강하게 힐난한다. 바그너는 예술이 부여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인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예술의 절대미라는 소재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도 다루어졌던 것인데, <루드비히>에서는 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보여지고 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예술에 집착하며 백조가 떠다니는 지하동굴에서 노를 젓고 배를 탄다든지, 일주일 밤낮을 배우를 괴롭히며 시를 읊게 한다든지, 기괴할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게 성과 궁정의 홀을 꾸민다든지 하는 루드비히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마치 타지오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듯 바라보면서 얼굴에 분칠을 하던 아센바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달까.    

자신이 아꼈던 동생 오토 왕자와 마찬가지로, 루드비히 또한 정신병으로 판단되어 의회의 타결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베르크 성으로 유배당하고 나서 루드비히의 죽음까지가 약간 늘어지는 감이 있다. (사실 그 전에는 네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무색하리만치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영화가 딱히 길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불멸을 믿느냐고 시종에게 물으면서, 마지막 선물로 자신에게 남은 금화 몇 개를 쥐어주는 루드비히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식사하거나 잠자는 것도 금지당한 채 갇혀 있던 그는 마지막으로 정신과의 구덴 박사와 밤 산책을 나가고, 연못에서 익사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땅에 눕혀진 그의 시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흘러갔다.

아름답고 처연한 영화였다. 뭐라 말을 하고 싶은데 덧붙일 말을 찾기가 힘들었던, 벅찬 느낌의 작품. 뒤늦게서야 보게 되어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품, 이라는 말이 글자 그대로 아깝지 않은 영화.  

+ 바로 옆에 왠지 낯익은 얼굴이 있어서 봤더니 박찬욱 감독님이었다. 오오, 유명인! 영화를 보는 내내 잘 웃으시던데, 가끔은 전혀 웃기지 않은 장면에서도;; 개그 코드가 다른 건가, 아니면 이탈리아어를 알아들으시는 건가?

@ 서울아트시네마, with Min

Posted by 레이

2009/11/01 21:08 2009/11/0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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