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를 처음 봤던 때가 언제였더라, 아무튼 개봉할 즈음은 아니었다. 연애 혹은 결혼에 별로 관심도 없던 시기였고, 무엇보다 「이 남자와 ..하고 싶다!」라는 카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우성과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끌릴 부분도 없었다. 그 후 어쩌다가, 한 번 봤는데 기억나는 건 엄정화가 분한 연희가 엄청난 여우과였다는 것 정도. 그리고 어쩌다가 오늘 다시 보게 됐다. 개봉했을 때와, 처음 봤을 때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를까, 그리고 그게 이 영화의 감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아무튼 예전처럼 단순하게(?) 이 영화를 보기가 힘들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소위 결혼적령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최근에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친구들의 결혼, 아는 사람의 이혼,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맞선 자리(소개팅이 아니다), 생각이 없었던 내게 결혼을 종용하는 바람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전 남자친구, 전화할 때마다 연애는 잘 하고 있느냐고 은근히 물어오시는 어머니까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 외면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결혼이라는 사회 시스템의 원리는 꽤 흥미진진하다. 단순히 서로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사랑해서, 좋아서 하는 연애와 결혼은 전혀 다르다. 오죽하면 결혼하고 싶은 상대와 연애하고 싶은 상대라는 분류 기준까지 있겠는가 말이다.
「제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결혼처럼 잘 들어맞는 경우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즉 외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건간에 일단 결혼 상대자들끼리는 서로가 자신의 현재 상황에 최고로 들어맞는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내 일 아니지만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하는 늙고 돈 많은 남자(여자)와 젊고 아름답지만 무능력한 여자(남자)의 커플은 그런 면에서 무척 합리적이다. 상대가 갖지 못한 것을 채워주는 윈윈 게임이랄까. 단지 거기서 노골적으로 풍겨 나오는 돈냄새와 젊고 섹시한 외모에 대한 열망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게지. 훌륭한 외모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의 파트너가 개쓰레기같은 인간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 훌륭한씨에게는 상대의 어떤 면이 - 하다못해 돌봐주고 싶은 휴머니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대로라도 - 자신에게 들어맞기 때문에 결혼을 결정한다는 것. 말하자면 궁극적 의미로 '밑지는 결혼'이란, 일단 결혼 초기에는 거의 없다고 본다.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변화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마음이든 경제적 면이든 외면이든) 적어도 결혼을 결정하는 그 시점에는, 자신이 가진 패를 가지고 낚을 수 있는 최선의 상대를 고르는 것이 결혼의 원리겠지.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남자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가진 패에 비해 남자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는 여자와, 자신이 가진 패로는 높은 수준의 여자를 얻을 수 없기에 결혼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자신과 사랑을 나누고 남편과 아내인 듯 방글거리며 애교를 부리다가도 다른 남자와 맞선을 보고 결혼해 버리는 연희에게 그다지 열패감이나 분노도 보이지 않으며 쉽게 포기하는 준영의 태도는 바로 그런 데서 기인한다. 어차피 '결혼'이라는 시스템의 본질상 연희는 자신과 결혼할 리가 만무하고, 그러므로 그녀와의 결혼에 대해서는 마음을 일찌감치 접어버린 거다. 하지만 그들의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마치 주말부부인양 외딴 섬같은 옥탑방에서 신혼 생활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둘의 상황은 초현실에서 현실로 변질되어 간다. 암묵적 합의 하에 둘만의 동화를 만들었지만 커져 가는 감정이 끼어들면서 그냥 시니컬하게 넘길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연희가 결혼한 것에 대해서, 가끔씩 내킬 때 찾아와서 묵고 가는 것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던 준영이, 그녀가 흔적을 남기고 그저 휙 가버리는 것에 대해 분노를 처음으로 토해낼 때부터 나름 완전해 보이던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준영은 연희의 남편에 대해 물어보기까지 한다. 그 전에 그들이 만든 동화 속에서는 연희의 남편은 가끔 걸려오는 전화를 빼고는 존재조차 없었는데.
그렇다면 연희는 어땠을까. 「미인인 건 맞는데, 착한 건 아니에요.」라고 웃으며 말했듯이 그녀는 소위 착한 여자는 아니다. 세상에선 적어도 이렇게 욕망하는 것을 모두 다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여자를 착하다고 칭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행동은 무척 뻔뻔스럽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닌데, 어쩌면 연희 입장에서는 이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자신있어! 안 들킬 자신!」- 이 대사가 연희의 모든 것을 표현해 주는 것일 게다.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 못지 않게, 사랑과 감성과 만족스런 섹스에 대한 욕구 또한 강한 연희에게 있어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의사와의 결혼, 그리고 준영과의 불륜이었을테다. 무엇보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최우선인 연희에게는 도덕적 기준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고, 또한 그에 함께 해 줄 준영이라는 상대 또한 있으니 연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지. 단지 그 위태로운 균형을 맞추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거였는데 그에 대한 자신감이 충분하니 위협요소도 거의 없다. <사랑과 전쟁>이었다면 어느 날 준영이 그 동안 찍은 사진들을 볼모삼아 연희의 결혼 생활을 위협했겠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준영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연희가 사람 보는 눈은 있고나.) 옥탑방의 신접 살림은 둘의 욕망이 함께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관계에 있어서 준영은 바닷물에 휘둘리는 미역같기만 하다. 휘청휘청, 흔들흔들, 왔다갔다. 자의로 한 건 라면 끓인 것밖에 없구나.
문득 그런 생각은 한다. 만약 준영이 연희를 붙잡았다면, 맞선을 보지 말라고 했다면, 그럼 둘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결국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준영이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고 연희를 붙잡을 남자였다면, 그 후 연희가 결혼하고 나서 - 잡았든 놓았든 연희는 준영과 결혼했을 리는 없다고 본다 - 그녀의 돈을 빌려 옥탑방에 둘만의 살림을 차리고 산다는 상황을 받아들여 평탄하게 유지해 나갈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둘의 관계는 파탄났을 것이고, 어쩌면 연희의 결혼 또한 끝장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준영의 캐릭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니컬한 포기, 였고 그랬기에 이 모든 관계가 가능했으며, 영화의 결말로 향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렇게 눈 내리는 날 다시 돌아온 연희를 또 그 빛바랜 듯한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이는 준영의 모습이 그린 듯이 보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들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그런데 점점 그들과 닮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결혼은, 미친 짓일지도 모르지. 혹은 미친 짓임을 알지만 하게 되는 것일지도.
+ 6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이 작품에서 박원상은 나름 푸릇푸릇한데 <별순검 시즌 2>에서는 너무 달라져서 놀랐다;; 하긴 6년이면 그리 짧은 기간도 아니긴 하구나. 그러나 감우성을 생각해 보면?
+ 이 영화에서 감우성과 엄정화는 무척 매력적이다. 특히 유약하고 맥아리없지만(...) 시니컬하며 까칠한 매력이 돋보이는 먹물 역할에 잘 어울리던 감우성. 그 제자와는 어떻게 되었는지. 엄정화의 남편인 의사는 그다지 못생기진 않았던데, 내가 눈이 관대해진 건가 아니면 일단 조연이지만 영화배우 풀에서 물색하다 보니 심하게 못생긴 사람은 없었던 건가.
Posted by 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