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Brideshead Revisited, 1981년 그라나다 티비에서 만든 11부작 드라마다. 얼마 전에 벤 위쇼와 매튜 굿이 주연한 동명의, 동일 내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그건 그다지 보고 싶지 않고, 일단은 이 드라마부터. 아니, 그나저나 아직 이걸 보지 않았다니 과연 내가 제레미 아이언스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메릴 스트립과 같이 나왔던 미묘한 영화 <프랑스 중위의 여자>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이 때만 해도 꽤 정상적인(?) 인물을 연기했었다. 한 편 한 편, 대사를 곱씹어가면서 에드워드 시대 풍요롭기 그지없던 어떤 귀족 한량들의 쓸쓸한 인생을 감상하고 있는 중. 문득 복식사 공부를 정식으로 해 보고 싶어졌다. 요즘은 영화를 볼 때 미술과 의상 쪽에도 꽤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잔잔하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6화 정도까지 나와 있다. 동네에 저런 식당이 있으면 좋을까, 싶다가도 옆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아닌 한국에서는 이 드라마와는 꽤 다른 분위기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 사실 집 바로 옆에, 저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꽤 소담하고 작은 일식집이 하나 있긴 한데- 의외로 맛이 괜찮은지 손님이 너무 많아서 감히 가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어느 사람 없는 저녁에 가서 우동이랑 초밥을 좀 먹어보고 싶은데.

Posted by 레이

2009/11/21 21:03 2009/11/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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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소녀 수집하는 노인>을 읽고 나서 마음에 쏙 들어버린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 그 이후로 그녀의 작품집을 주욱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가장 유명세를 얻고 있는 것은 오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토장이의 딸>이라는 장편이지만, 그 전에 일단 단편집과 중편 소설들을 차례로 읽고 있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꽤 있다. 둘 다 매우 미국적이고, 건조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문체를 갖고 있는 데다 예상치 못한 사건과 인물의 행동이 연이어 터지는 서스펜스를 선사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어빙의 경우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까지는 되지 않았는데 오츠는 현재 한국에 번역된 건 다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런데 이 작가의 특성상 원서로 읽는 게 훨씬 낫다고는 한다. <사토장이의 딸>은 그냥 원서로 구해다 읽을까.

<여자라는 종족>은 제목 그대로, 여자라는 종족이 갖고 있는 잔인함과 무정함, 강박, 불안증과 비뚤어진 애정, 분노와 어리석음을 샅샅이 파헤치고 있는 열 편 가량의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완벽주의자>와 비슷하다고도 느꼈는데, <완벽주의자>에서는 여자들을 멀리서 관찰하며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던 반면 <여자라는 종족>은 보다 더 날것 그대로의 분위기를 풍긴다. 조소와 풍자의 은근함이 아니라, 쾅쾅 머리를 내리치는 사건들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 현실감이 풍겨 나오는 작품들이다. 몇 편은 읽다가 도중에 잠깐 쉬어야 했다. 피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은 단편들도 있었고, 비릿한 역겨움이 느껴지는 작품, 공포스러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종족에 대한 혐오감까지 느껴졌던 <완벽주의자>보다는 편하게 읽혔다. 묘한 일이지.

오츠의 초기작, 사이코패스이자 아동 성범죄자인 쿠엔틴의 '나만의 좀비 만들기 프로젝트'를 다룬 <좀비>는 꽤 오래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놀라우리만치 충격적이다. 사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개념은 이미 널리 퍼져 있지만 이 작품이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완벽히, 아무 죄의식 - 그는 그것이 일종의 소명이자 자신의 애정 표현이라 여긴다 - 없이 납치와 강간, 살인을 행하는' 인물의 건조한 심리 묘사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영역이었을게다. 실제로 수많은 범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고유의 특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많은 사람들이 품어 왔다. 덕분에 범죄 심리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게고. <좀비>를 읽다 보면 수많은 강간범, 성범죄자, 하다 못해 스토커들의 심리가 이런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중산층 집안에서 정상적인 부모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쿠엔틴은 동성애자이자 서른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 보지 못한 백인이다. 지금은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 환경 및 인종 등이 범죄와 많은 부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책 안에서도 쿠엔틴은 줄곧 자신이 '백인'임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한다. 그로 인해 의심받지 않고 수월히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고. 그는 자신에게 성적으로 복종할 자신만의 좀비를 만들기를 원하는데, 의학 서적에서 본 전두엽 제거 수술로 - 그는 얼음 송곳으로 쉽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책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자 한다 - 좀비를 만들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하지만 당연히(?) 이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그는 자신만의 좀비에 대한 열망에 미친듯 시달린다. 그렇게 몇 명을 강간하고 죽인 후에 - 도중에 네크로필리아적 장면도 나오는데, 꽤나 역겹다. 난 이런 장면에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역시 - 자신의 최종 목표물, '다람쥐'를 발견한다. 훤칠하고 마른 몸의, 아직은 어리다 싶게 젊은 청소년인 자신의 목표물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그리고 그 도중에 그가 느끼는 감정 및 비뚤어진 시각 등은 읽는 사람마저 불안하고 섬뜩해지게 한다. 결국 그는 다람쥐까지도 좀비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그냥 강에 시체를 유기하지만,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의심만 받고 잡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는 또다른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계획한다.
너무나 무난하고 정상적인 집안에서 자란, 그리고 가끔은 소소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까지하는 쿠엔틴이 저지르는 범죄는 어찌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거침이 없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쿠엔틴이 - 혹은 오츠가 - 쓰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기장과 같은 이 작품 속에서는 그의 행동이 나름의 논리를 갖는다. 그리고 그 논리 속에서 쿠엔틴은 정당화되고, 그의 행동은 지속된다. 그리고 사회와 법은 그의 행동을 제대로 막아줄 만한 방패가 못 된다. 그저 전율과 함께, 무기력함이 느껴질 뿐. 그런 인간도 세상에는 있고, 삶이란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뿐. 오랜만에, 소설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

Posted by 레이

2009/11/19 22:38 2009/11/1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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