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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R A Y &#039; s - attic</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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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karay@hotmail.com
■ RAY&#039;S - attic 2nd. http://asakaray.tistory.com/</subtitle>
  <updated>2009-11-22T19:14:0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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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요즘 보고 있는 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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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1T21:03:29+09:00</updated>
    <published>2009-11-21T21:03:00+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Brideshead Revisited, 1981년 그라나다 티비에서 만든 11부작 드라마다. 얼마 전에 벤 위쇼와 매튜 굿이 주연한 동명의, 동일 내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그건 그다지 보고 싶지 않고, 일단은 이 드라마부터. 아니, 그나저나 아직 이걸 보지 않았다니 과연 내가 제레미 아이언스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메릴 스트립과 같이 나왔던 미묘한 영화 &amp;lt;프랑스 중위의 여자&amp;gt;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이 때만 해도 꽤 정상적인(?) 인물을 연기했었다. 한 편 한 편, 대사를 곱씹어가면서 에드워드 시대 풍요롭기 그지없던 어떤 귀족 한량들의 쓸쓸한 인생을 감상하고 있는 중. 문득 복식사 공부를 정식으로 해 보고 싶어졌다. 요즘은 영화를 볼 때 미술과 의상 쪽에도 꽤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lt;BR&gt;&lt;BR&gt;잔잔하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일본 드라마, &amp;lt;심야식당&amp;gt;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6화 정도까지 나와 있다. 동네에 저런 식당이 있으면 좋을까, 싶다가도 옆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아닌 한국에서는 이 드라마와는 꽤 다른 분위기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 사실 집 바로 옆에, 저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꽤 소담하고 작은 일식집이 하나 있긴 한데- 의외로 맛이 괜찮은지 손님이 너무 많아서 감히 가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어느 사람 없는 저녁에 가서 우동이랑 초밥을 좀 먹어보고 싶은데. &lt;BR&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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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여자라는 종족 &amp; 좀비 by 조이스 캐롤 오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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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9T22:38:34+09:00</updated>
    <published>2009-11-19T22:38:34+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전에 &amp;lt;소녀 수집하는 노인&amp;gt;을 읽고 나서 마음에 쏙 들어버린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 그 이후로 그녀의 작품집을 주욱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가장 유명세를 얻고 있는 것은 오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amp;lt;사토장이의 딸&amp;gt;이라는 장편이지만, 그 전에 일단 단편집과 중편 소설들을 차례로 읽고 있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존 어빙의 &amp;lt;가아프가 본 세상&amp;gt;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꽤 있다. 둘 다 매우 미국적이고, 건조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문체를 갖고 있는 데다 예상치 못한 사건과 인물의 행동이 연이어 터지는 서스펜스를 선사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어빙의 경우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까지는 되지 않았는데 오츠는 현재 한국에 번역된 건 다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런데 이 작가의 특성상 원서로 읽는 게 훨씬 낫다고는 한다. &amp;lt;사토장이의 딸&amp;gt;은 그냥 원서로 구해다 읽을까. &lt;BR&gt;&lt;BR&gt;&amp;lt;여자라는 종족&amp;gt;은 제목 그대로, 여자라는 종족이 갖고 있는 잔인함과 무정함, 강박, 불안증과 비뚤어진 애정, 분노와 어리석음을 샅샅이 파헤치고 있는 열 편 가량의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amp;lt;완벽주의자&amp;gt;와 비슷하다고도 느꼈는데, &amp;lt;완벽주의자&amp;gt;에서는 여자들을 멀리서 관찰하며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던 반면 &amp;lt;여자라는 종족&amp;gt;은 보다 더 날것 그대로의 분위기를 풍긴다. 조소와 풍자의 은근함이 아니라, 쾅쾅 머리를 내리치는 사건들이 정말 &#039;일어나고&#039; 있는 현실감이 풍겨 나오는 작품들이다. 몇 편은 읽다가 도중에 잠깐 쉬어야 했다. 피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은 단편들도 있었고, 비릿한 역겨움이 느껴지는 작품, 공포스러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종족에 대한 혐오감까지 느껴졌던 &amp;lt;완벽주의자&amp;gt;보다는 편하게 읽혔다. 묘한 일이지. &lt;BR&gt;&lt;BR&gt;오츠의 초기작, 사이코패스이자 아동 성범죄자인 쿠엔틴의 &#039;나만의 좀비 만들기 프로젝트&#039;를 다룬 &amp;lt;좀비&amp;gt;는 꽤 오래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놀라우리만치 충격적이다. 사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개념은 이미 널리 퍼져 있지만 이 작품이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039;완벽히, 아무 죄의식 - 그는 그것이 일종의 소명이자 자신의 애정 표현이라 여긴다 - 없이 납치와 강간, 살인을 행하는&#039; 인물의 건조한 심리 묘사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영역이었을게다. 실제로 수많은 범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고유의 특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많은 사람들이 품어 왔다. 덕분에 범죄 심리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게고. &amp;lt;좀비&amp;gt;를 읽다 보면 수많은 강간범, 성범죄자, 하다 못해 스토커들의 심리가 이런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lt;BR&gt;중산층 집안에서 정상적인 부모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쿠엔틴은 동성애자이자 서른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 보지 못한 백인이다. 지금은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 환경 및 인종 등이 범죄와 많은 부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책 안에서도 쿠엔틴은 줄곧 자신이 &#039;백인&#039;임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한다. 그로 인해 의심받지 않고 수월히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고. 그는 자신에게 성적으로 복종할 자신만의 좀비를 만들기를 원하는데, 의학 서적에서 본 전두엽 제거 수술로 - 그는 얼음 송곳으로 쉽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책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자 한다 - 좀비를 만들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하지만 당연히(?) 이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그는 자신만의 좀비에 대한 열망에 미친듯 시달린다. 그렇게 몇 명을 강간하고 죽인 후에 - 도중에 네크로필리아적 장면도 나오는데, 꽤나 역겹다. 난 이런 장면에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역시 - 자신의 최종 목표물, &#039;다람쥐&#039;를 발견한다. 훤칠하고 마른 몸의, 아직은 어리다 싶게 젊은 청소년인 자신의 목표물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그리고 그 도중에 그가 느끼는 감정 및 비뚤어진 시각 등은 읽는 사람마저 불안하고 섬뜩해지게 한다. 결국 그는 다람쥐까지도 좀비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그냥 강에 시체를 유기하지만,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의심만 받고 잡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는 또다른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계획한다. &lt;BR&gt;너무나 무난하고 정상적인 집안에서 자란, 그리고 가끔은 소소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까지하는 쿠엔틴이 저지르는 범죄는 어찌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거침이 없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쿠엔틴이 - 혹은 오츠가 - 쓰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기장과 같은 이 작품 속에서는 그의 행동이 나름의 논리를 갖는다. 그리고 그 논리 속에서 쿠엔틴은 정당화되고, 그의 행동은 지속된다. 그리고 사회와 법은 그의 행동을 제대로 막아줄 만한 방패가 못 된다. 그저 전율과 함께, 무기력함이 느껴질 뿐. 그런 인간도 세상에는 있고, 삶이란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뿐. 오랜만에, 소설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 &lt;BR&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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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유인원과의 산책 (by 사이 몽고메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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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레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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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7T23:26:14+09:00</updated>
    <published>2009-11-17T23:23:09+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t;유인원과의 산책&amp;gt;은 인류의 발상지가 아프리카임을 입증했으며 인류의 근원을 연구했던 인류학자이자 영장류 학자인 루이스 리키의 세 수제자, 삼총사인 제인 구달, 다이안 포시, 비루테 골디카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의 논픽션이다. 그녀가 이 세 명의 여전사이자 현대의 샤먼 - 라고 사이 몽고메리는 그들을 칭하고 있다 - 들을 만났던 개인적 경험에 대해서도 적고 있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하지만 이 세 명의 여성 학자들의 인생 이야기는 극히 인상적이고 애절하면서도 극적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 많아서, 읽어갈수록 마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부쩍 추워진 어느 날, 홍대 앞의 카페 한 곳에 네 시간이 넘게 틀어박혀 몰두한 끝에 다 읽어버렸다. &lt;BR&gt;&lt;BR&gt;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계부와 엄마 아래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애정 결핍에 시달렸으며 극단적인 성격으로 인해 주변에 사람을 오래 두지 못하던 다이안 포시의 이야기였다. 다이안 포시에 대해 처음 읽었던 건 대학 시절, 그것도 얼핏 스쳐 지나가던 고릴라 연구 학자의 이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의 다이안 포시에게서는 단순한 학자로서의 면모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운틴 고릴라에게 자신의 트라우마와 인간에게 못다 준 열정을 모두 다 바친- 어떻게 보면 가엾고 어떻게 보면 행복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더 강하게 읽힌다. 그녀는 루이스 리키와도 로맨틱한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사랑에 쉽게 빠졌고 불같은 연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모든 연애는 파국을 맞았다.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와 있는 가족은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지키지만 - 어미 고릴라를 비롯한 고릴라 가족을 몰살시키지 않는 한 새끼 고릴라를 훔쳐 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 그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매몰차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마운틴 고릴라는 다이안 포시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비지트라는 고릴라가 수렵꾼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넋을 잃고 우울함에 빠져 있던 다이안 포시 또한 자신이 평생을 지내며 숲의 여신과도 같이 군림했던 르완다의 숲 속 오막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명예와 재산은 그녀를 외면했던 생모와 계부에게 돌아갔다고.) &lt;BR&gt;&lt;BR&gt;제인 구달은 이 세 명의 학자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으며 가장 많은 경제적, 정신적 - 그녀들의 스승 루이스 리키로부터조차도 - 지원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관찰 끝에 밝혀내기도 했으며 영장류 연구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그녀의 공적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그녀의 유명세에는 가장 인간의 행동을 닮아 있다는 침팬지를 연구한 덕분도 약간은 있었다고 사이 몽고메리는 적고 있다. 제인 구달은 어미 침팬지와 새끼 침팬지 사이의 애착과, 어미의 애정이 새끼에게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에 관해 논문을 발표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게도 되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 주장은 최근의 모성애 본능에 대한 회의설과는 배치되는 입장이기도 하다. 연구 결과에서 추출된 가설이지만 그녀의 주장은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이자 엄마인 여자들에게 또 하나의 죄책감과 짐을 얹어주는 모양이 될 테니까. 실제 구달은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회사로 향하는 어머니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도 한다. 마냥 침팬지를 사랑하는 성인과도 같아 보이는 제인 구달의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행동에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곰베의 침팬지 플로 및 그녀의 새끼들을 제외한 일반 침팬지들의 환경 개선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연구 주제인 침팬지들에 대해 연구 대상 이상의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녀의 연구를 성공으로 이끌긴 했지만, 그것이 종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변환하지는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내 자식이나 연인이 사랑스럽다고 해서 인류 전체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 &lt;BR&gt;&lt;BR&gt;사실 잘 몰랐던, 그리고 유인원 관련 서적에서도 가장 적게 다루어지고 있던 비루테 골디카스는 오랑우탄을 연구했던 여성 학자다. 오랑우탄은 무척 신기하게도, 군집을 이루어 생활하는 일이 거의 없고 기본적으로 개인적이며 핵가족 중심의 생활 양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책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여성 학자 세 명과 그들의 연구 대상이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비루테 골디카스 또한 무척 담담하고 개인적인 성격으로, (가족 내의 위치에 대해 신경 쓰는 고릴라와 비슷하게) 사회적 지위 및 리키의 수제자 서열 등에 무척이나 신경 쓰던 다이안 포시와는 달리 그런 류의 사회적 명성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비루테 골디카스를 다룬 부분에서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생활 양식에 대한 언급이 꽤 많이 나온다. 무척 세밀하게 조율되어 있는 사회적 예의라는 것이 인도네시아인의 생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며, 비루테가 그런 양식에 어떻게 적응하고 현지인을 남편으로 맞게까지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불행한 것으로 터부시하는 서양인의 관점과는 달리, 그들은 인생에 있어 &#039;어쩔 수 없는&#039; 부분에 대해 포기하고 산다. 수많은 자연 재해와 죽음에 늘 노출되어 있는 그들로서는 죽음이나 소멸이 낯설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 식인 풍습도 있었던 곳이고, 그런 행위에 대해 거부감도 없다고 한다. 소위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절대적인 명제인가? 아니면 그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시작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 그리고 신의 손으로 빚어진 인간이라는 기독교의 관점 이후로 서양 문화의 근간이 된&#039;하나의 관점&#039;일 뿐인가. 그저 명제로서의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만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039;기준&#039;이나 &#039;한계&#039;가 있어야 한다. 거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곧 어떤 것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내가 갖고 있는 관점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인간이 중요하고 동물도 중요하고, 죽음은 두려운 것이며 인생의 역경과 어려움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내 기본적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새삼 갖가지 의문을 갖게끔 했던 부분. &lt;BR&gt;&lt;BR&gt;무척 재미있는 책이어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을 두어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lt;BR&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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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바스터즈: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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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6T18:48:52+09:00</updated>
    <published>2009-11-16T18:48:52+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정말 좋았다. 일단 재미도 있었고, 적절히 잔인하지만 잔혹하지 않고,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영웅을 만들지는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적당히 웃겨도 준다. (이탈리아 어 장면, 캬캬) 흥겹게 서스펜스만 즐겨도 되고 세밀하게 분석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또 그럴만한 꺼리를 던져 준다. 타란티노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분이다. 역시 인간은 재밌어. 이건 긍정적인 의미다. 지난 주에 보고나서 그 뒤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추천하고 다닌다. &lt;BR&gt;&lt;BR&gt;브래드 피트 연기 괜찮던데, 난. 그 알 수 없는 억양도 좋았고. 오랜만에 마이클 파스빈더를 봐서 더 좋았다. 난 이 사람이 갖고 있는 깔끔하고 창백한 마스크가 무척 마음에 든다. 전형적인 영국인으로 나오는 &amp;lt;아가사 크리스티&amp;gt; 시리즈의 에피소드때문인지 독일인이라는 사실을 깜박깜박 잊는데, 깨닫고 보면 참 독일적인(?) 얼굴이기도. 독일인 파스빈더가 영국인으로 나와서 악센트와 제스처가 이상하다는 이유로 의심받는 설정이 웃겼다. 크리스토퍼 발츠의 연기도 발군. 얄밉고 웃기고 여러모로 대단하다. 독어와 불어,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왔다갔다 하는 외국어의 향연 속에서 한참을 행복했네.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냥 난 외국어가 주는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도 같다. &lt;BR&gt;&lt;BR&gt;아무튼 추천, 무조건 추천. 그런데 이제 거의 내려가고 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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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 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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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6T18:28:37+09:00</updated>
    <published>2009-11-13T16:33:57+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lt;P&gt;&amp;lt;끔찍하게 민감한 마음&amp;gt;은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 시리즈로 나온 모음집 중 하나이다. &#039;일반 독자&#039;의 자세로 당대 및 고전 영문학 작품 및 작가들에 대한 울프의 감상을 풀어 놓은 글들인데, 읽다 보면 흥미가 생기는 사람들이 몇몇 생긴다. 예전에 잠깐 읽다가 그만두었던 캐서린 맨스필드나 나를 끝없이 졸게 만들었던 존 던, 그리고 마가렛 캐번디시와 크리스티나 로제티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오랜만에 영문학사 책을 훑어봤다. 그러고 보니 노튼 앤솔로지를 아직도 사지 못했네. (영원히 못 살 듯 ㄱ- 나 전직 영문학도가 맞긴 맞는 걸까;;)&lt;BR&gt;&lt;BR&gt;-&lt;BR&gt;일반 독자란 닥터 존슨이 암시한 바에 의하면 비평가나 학자와는 다르다. 교육도 형편없으며 자연으로부터 아무런 재능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이다. 일반 독자는 남들의 의견을 정정하거나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떠한 잡동사니라도 그것에서 어떤 전체를 스스로 창조하려는 본능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이다. &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일반 독자]&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명성이다, 라고 뉴카슬 공작부인인 마가렛 캐번디시는 썼다. ... 그녀에게는 새대가리만큼의 지능과 머리가 돈 듯한 기질과 함께 뭔가 고상하고 돈키호테처럼 희한하며 대담한 점이 있다. &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뉴카슬 공작 부인] &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위장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손함이 너무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통과 의식을 던져 버리고 마음에 맞는 한두 사람과 &#039;가벼운 말&#039;로 대화하는 것은 더운 방 안의 한 줄기 공기처럼 필수품이다. &lt;BR&gt;... 그러나 그가 선택한 이 여인은 생기 없는 노예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도 있었다. 그녀는 초연했고, 고상함과 우아함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근엄한 비판가였으며, 분명히 말하는 습관과 불 같은 성미와 그녀가 생각하는 것을 겁없이 말하는 대담함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이었던 것 같다. &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스위프트의 &amp;lt;스텔라에게 보내는 일기장&amp;gt;]&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자기중심적이고 자기한계적인 작가들은 더 보편적이고 폭넓은 마음을 지닌 자들에게는 없는 어떤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인상은 자신들의 좁은 벽 사이에 꽉 담겨서 강하게 눌려 있다 그들 자신의 인상이 찍혀 있지 않은 것은 결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올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작가들에게 배우는 것이 거의 없으며, 그들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동화시키지 못한다. &lt;BR&gt;... 적어도 샬롯 브론테는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그녀는 대신 불 같은 열정과 빠른 속도로 &#039;내가 전통적인 과묵함의 외벽을 지나, 자신감의 문지방을 건너서 그들 가슴 속의 벽난롯가에 자리를 얻을 때까지&#039; 자기만의 진정한 목소리로 계속 나아간다. 바로 그 장소에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그녀의 페이지를 밝히는 것은 가슴의 불에서 나오는 그 붉고 발작적인 광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정교하게 관찰한 인물들을 보려고 샬롯 브론테를 읽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그녀의 시때문에 그녀를 읽는다. &lt;BR&gt;&lt;BR&gt;...우리 자신이 보았던 것과는 너무나 닮지 않은 남자와 여자에게 어떻게 진실과 통찰력과 감정의 섬세한 색조가 있을 수 있냐고 우리는 묻도록 허락된다. 그러나 질문을 하면서도 우리는 히스클리프에게서, 천재였던 누이가 보았을 오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런 인물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서 어떤 청년도 그만큼 더 생생한 존재를 지녔던 적은 없다. 두 명의 캐서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여인도 결코 그들 식으로 느낄 수 없고 그들 방식대로 행동할 수 없다고 우리는 말한다. 동시에 그들은 영국 소설에서 가장 사랑스런 여인들이다. 그것은 마치 에밀리 브론테가 인간에 대해 우리들이 아는 방편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대신 이 알 수 없는 투명함에다 너무나 격렬한 생명을 불어넣어서 그들로 하여금 이 현실을 초월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녀의 능력은 모든 능력 가운데 가장 희귀한 것이다. 그녀는 인생을 그 사실에 대한 의존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약간만 손을 대면 한 얼굴의 영혼을 보여줄 수가 있어서 어떤 신체도 필요 없게 만들었다. 광야에 대해 말함으로써 바람이 불고 천둥이 포효하게끔 만들었다.&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 [&amp;lt;제인 에어&amp;gt;와 &amp;lt;폭풍의 언덕&amp;gt;]&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우리는 자신과 홀로 있는 마음을, 관중이 지켜본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때때로 속기체로 써내려가거나, 외로울 떄 마음이 흔히 하듯이 둘로 나뉘어져서 자신과대화하고 있는 마음을 지켜보고 있는 것같이 느낀다. 캐더린 맨스필드가 쓴 캐더린 맨스필드. 그러나 조각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어떤 방향을 그것들에게 주기 시작한다. &lt;BR&gt;... 그러나 단지 사물을 온당하게 그리고 민감하게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글쓰기란 충분하지 않다. 글은 무엇인가 표현되지 않은 것 위에 기초를 두어야 하며, 그리고 이 무엇이란 반드시 굳건하고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lt;BR&gt;... 이 일기는 다음 말로 끝난다. &#039;만사가 다 좋다.&#039; 그리고 석 달 후에 그녀는 죽었다. &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끔찍하게 민감한 마음]&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책들을 읽는다는 것, 자기가 싫은 책들을 좋아하는 척 결코 가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 그것이 책읽기 기술에 대한 그의 유일한 가르침이었다. 나머지 모든 점은 스스로 배워야 한다. &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레슬리 스티븐]&lt;/FONT&gt;&lt;/STRONG&gt; &lt;FONT color=#c1c1c1&gt;- 레슬리 스티븐 경은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였다.&lt;/FONT&gt; &lt;BR&gt;&lt;BR&gt;전형적인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은 달변을 사랑했고 용감한 신조어를 갈구했기 때문에 확대하고 종합하는 경향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은 넓은 풍경과, 영웅적인 미덕과, 영웅적인 투쟁을 하는, 또는 대개 숭고한 외향을 지닌 인물들을 사랑했다. 산문 작가들조차도 똑같이 과장, 확대하는 버릇이 있었다. &lt;BR&gt;... 그러므로 베드포드 부인이 &#039;신의 걸작&#039;이고 그녀가 모든 시대의 모든 여인들을 능가한다는 시구를 읽을 때 우리는 존 단이 베드포드 부인에게 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즉, 시가 계급에 경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거리감은 정열보다는 이성을 고무하는 역할을 하였다. 단이 후원자를 칭송하는 시에서 보여주는 극도의 박식함과 미묘함은 후원자를 위해 글을 쓰는 한 가지 이유가 시인 자신의 독창성을 과장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 [3세기 이후의 단]&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유행성 독감의 세균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어찌 천재의 근원균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백 년도 안 된다. 보즈웰은 한 인간의 생애가 책으로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거의 첫 번째의 작가일 것이다. &lt;BR&gt;... 우리는 19세기 작가들이 모두 상당히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라는 것을, 그들의 생애를 통해 하나의 사실로 알고 있다. 대부분이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았다. ... 이제 우리는 질문한다. 물질적 번영과 그 지적 창조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전자가 후자로 이끄는가? 이에 대해 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 하지만 나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 19세기 작가들에게 인생은 여러 개의 밭으로 나누어진 풍경 같아 보였을 것이다. 각기 어느 정도 자기네만의 전통, 즉 고유의 태도, 고유의 말투, 고유의 의복, 고유의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평화덕분에 각 그룹은 그 번영에 속박되었다. ... 왜 19세기 작가들이 그렇게 많은 인물을 유형이 아닌 개개인으로 창조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그 사실이 도움을 주지 않는가? 계급을 구분하는 울타리를 그가 보지 않았기 떄문에 그 울타리 안에서 사는 인간들만을 본 것이 아닐까? ... 1914년에서조차도 우리는 작가가 19세기 내내 앉아서 인생을 보는 식으로 앉아 있는 것을 여전히 본다. 그리고 그 인생은 여전히 계층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태어난 그 계층을 가장 열심히 보고 있다. 계층은 여전히 안정되어 있어서 그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렸다. &lt;BR&gt;&lt;BR&gt;...그러나 그들은 그 탑을 파괴하거나 그곳에서 내려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 오히려 모두가 그 탑에 접근 가능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 하지만 그 탑 자체가, 그리고 그들이 탑에서 본 것이 얼마나 다른지! ... 즉 중산층 출신과 비싼 교육이라는 탑의 기울어가는 성향이다. &lt;BR&gt;&lt;BR&gt;... 인생은 더 이상 울타리로 나뉘어 있지 않을 것이다. ... 계급 없고 탑 없는 세상에 관한 소설은 옛날 소설보다 더 나은 소설이 될 것이다 소설가들은 훨씬 더 흥미 있는 사람을 묘사할 것이다. ... 지금 영국은 이 두 세계 사이의 심연을 연결하기 위해 드디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의 증거가 여기에 하나 있다 - 바로 이 책. 이 책은 산 것도 아니고 빌린 것도 아니다. 이것은 공공 도서관에서 대출한 것이다. ... 우리는 문학을 이해하게끔 스스로를 가르쳐야만 한다. 돈이 더 이상 우리를 대신하여 사고를 해줄 수 없다. ...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덧붙이고 우리 스스로 공헌할 것이다. 그 일은 한층 더 어렵다. 그 일을 위해서도 우리는 역시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lt;BR&gt;&lt;BR&gt;... 문학은 어느 누구의 사유지가 아니고 문학은 공동의 장이다. 그것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지 않다. ... 이렇게 해서 영국 문학은 이 전쟁에서 살아남고 심연을 건널 것이다 - 만약 우리와 같은 평민과 국외자들이 그 나라를 우리의 나라로 만든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떻게 읽고 쓸지를 그리고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창조할지를 가르칠 수 있다면. &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기울어가는 탑]&lt;/FONT&gt;&lt;/STRONG&gt;&lt;BR&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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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휴 그란트 출연 영화 두 편: 비터 문Bitter Moon &amp; 스몰타임크룩스 Small Time Crook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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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9T16:11:50+09:00</updated>
    <published>2009-11-07T22:53:17+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둘 다 꽤 옛날(?) 영화들인데, 그러고 보면 휴 그란트라는 배우도 참 연식이 오래되었구나. 은퇴한다 어쩐다 말도 많았고 엄청 큰 스캔들도 한 번 터졌고 했지만 놀라울만큼 오랫동안,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꾸준히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똑똑하고 지적인 배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웃기기까지 하니까 바랄 게 없지.(난 재미있는 혹은 웃기는 것에 지나치게 관대한 면이 있긴 하지만) &lt;BR&gt;&lt;BR&gt;&amp;lt;비터 문 Bitter Moon&amp;gt;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화제작으로, 남자와 여자의 연애 과정에 있어서의, 그리고 프랑스 여자에 대한 갖가지 클리셰들이 몽땅 집합해 있는 것 같은 묘사들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성애와 욕망에의 탐닉에 대한 묘사, 중간에 끊을 수 없게 하는 몰입도 높은 플롯에 강렬한 캐릭터와 빠른 전개 등이 인상적이었던 영화.&lt;FONT color=#c1c1c1&gt; (이거 쓰고 보니 좀 닭살돋네) &lt;/FONT&gt;로만 폴란스키의 아내가 여주인공 미미 역을 맡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못한다(...) 그래도 다행히 오스카 역의 피터 코요테, 나이즐 역의 휴 그란트, 피오나 역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상당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기에 여주인공의 연기가 슬쩍 묻히기도 하고, 사실 미미라는 캐릭터 자체는 대사 등보다는 반응과 행동의 극단성으로 캐리커처화된 캐릭터라서 어차피 비현실적 -_- 물론 그들이 경험하는 사랑의 시작과 중간, 끝과 구질구질한 연장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긴 하지만. 사랑의 시작은 다 다르지만 그 끝은 다들 비슷하다고 했던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오스카와 미미의 사랑이 그 극한에 다다랐을 때 오스카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던 미미의 모습. 정말 숨을 죽일만큼 요염하고 아름다웠다. 저런 여자를 거부할 남자가 있겠나, 하는 전형적인 표현이 즉각 떠오를만큼 매혹적이었다. &lt;BR&gt;&lt;BR&gt;&amp;lt;스몰 타임 크룩스 Small Time Crooks&amp;gt;는 내가 우디 앨런의 작품을 택할 때 기대하는 것들이 가득한 작품으로, 시니컬하고 웃기고 시원시원한데다가 &lt;STRONG&gt;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lt;/STRONG&gt;! 정말 최고다! 졸부가 된 삼류 인생 전과자 부부 - 와 그 무리 - 가 상류층의 교양을 배우기 위해 매진하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인인 프렌치만 매진하는 거지만, 것도 재미있었고, 그 와중에 당연히 드러나는 상류층의 허세나 허위 의식, 교양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속은 텅 빈 속물성이 까발려지는 것도 어이없을만큼 웃겼다. 그런 상류층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휴 그란트가 맡은 미술품 중개인 데이빗. 특히 주목할 부분은, 윈저 담배 케이스를 뜻하지 않게 선물받았을 때의 그의 표정과 모습이다. 우와, 이 사람 정말 연기 잘 하는구나- 라고 절절히 느꼈달까. 그런데 교양없고 무식한 전과자라는 역할은 우디 앨런에게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는데- 그는 아무리 봐도 유약하고 말만 디립다 많은 지식인으로 보이니까. 그 큼직한 뿔테 하며 흐늘거리고 하얀 몸, 적은 머리숱까지. 그래도 부인 프렌치의 걸걸한 목소리나 큰 덩치와 대비되면서 더 웃겼으니 그걸로 만족. 프렌치의 사촌 메이 캐릭터도 재미있었고, 사실 레이의 무리들은 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프렌치의 쿠키는 한 번 먹어보고 싶더라. 추릅. &lt;BR&gt;&lt;BR&gt;- 그러고 보면 내가 꾸준히 찾아보는 영화들은 휴 그란트 출연작들이 많더라. 난 사실 이 아저씨의 연기 스타일이나 발성, 제스처가 꽤 맘에 들기도 하고, 배우 자신도 지나치게 목에 힘을 주거나 진지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좋다. 한없이 가벼운 느낌, 그래도 늘 일정 수준의 질을 보장하는 작품과 연기를 보여주고. 그냥 편하다-라고 할까. 대단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고. 꽤 많이 봤다고 생각했건만 워낙 출연작이 많아서 다 보기도 힘들다. ㄱ-;;&lt;BR&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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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언씽커블 : 생존을 위한 재난재해 보고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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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23:36:26+09:00</updated>
    <published>2009-11-06T23:35:30+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잊지 않기 위해 해 두는 메모. 이 책은 여러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통해 인간이 재난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를 통계적으로 제시하면서 갖가지 재난에 닥쳤을 때를 대비, 자신의 &#039;재난 두뇌&#039;를 훈련시킬 것을 강조하는 일종의 연구서이다. 2001년 9월 11일의 소위 9/11 테러 이후로 쏟아져 나왔던 재난 관련 서적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나 자신도 꽤 겁이 많은 편이면서도 육체를 훈련시키거나 정신을 단련시키는 데 게으른 인간 중 하나니까. 사실 이런 류의 극한 상황이 닥치면 제일 먼저 나가떨어져 버릴 인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덕분에 &#039;공황&#039;이라든지 &#039;마비&#039; 등의 반응에 관련된 장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가장 낯선 장은 역시 &#039;영웅주의&#039;에 관한 부분. (쩝) &lt;BR&gt;&lt;BR&gt;재난 상황에 닥쳤을 때 사람들은 의외로, 생각지도 못할 만큼 천천히 움직인다고 한다.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이것저것 지시해 주는 상황이 훨씬 많은 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물건을 여럿 챙긴다든지(이런 종류의 행위를 칭하는 gathering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었다) 자신도 탈출을 위해 나가는 중이면서 남들에게 예의바르게 길을 양보하고 타인을 돕는다든지 하는 행위들이 속속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이타심이나 자신의 평판을 위한 (무의식적)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일종의 &#039;거부&#039; 단계의 행동에 속한다고 한다. 즉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피하고 거부하고 싶어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탈출 지연이 발생하고 위험도가 높아진다. 혹은 예전에 자신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이유로 재난 발생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lt;BR&gt;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잘 모르고,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재난에 대해서 더 큰 공포를 느낀다. 실제 통계에 의하면 자동차보다 비행기로 인한 사고 확률이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행기 공포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무서워하다가 조종을 배우고 나서 공포증을 극복했다는 실례가 많이 있다고 한다. &amp;nbsp;&lt;BR&gt;&lt;BR&gt;그리고 일단 위험을 의식하고 나면 인간의 몸은 공포로 인해 평소와 다른 상태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터널 시야(tunnel vision)이라든지 갑자기 너무나 모든 것이 잘 보이고 잘 들린다든지 하는 범상하지 않은 신체의 반응이다. 실제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039;인생에서 최고로 긴 몇 초간&#039; 이었다고 회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극한 상황으로 인해 뇌가 평소라면 잊어버렸을 수많은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늦게 간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혹은 갑자기 유체 이탈과 비슷한 해리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특수부대 대원들과 같이 특정 훈련을 받고 재난 상황에 반응이 빠른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유전적 특징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분비가 적고 회복력도 원래 빨랐다고 한다. 그리고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집단 사고를 하게 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그렇기에 통제가 잘 되고 적절한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재난의 피해는 최소로 줄일 수 있다. &lt;BR&gt;&lt;BR&gt;예루살렘의 하지 때는 엄청난 수의 군중이 성지 순례를 위해 모이는데, 이 때 언제나 많은 인명 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는 소위 공황 상태때문인데, 그 전까지는 평화롭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시발로 인하여 갑자기 공황 상태의 인간 덩어리가 되어 타인을 덮치는 것이다. 공황이 나타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꽤 재미있었다. 아예 생존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오히려 공황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생존 가능성이 약간 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발생하는 무력감(울거나 소리지르는 사람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감과 경쟁을 경험할 때 공황이 발생한다. 실제 군중들 사이에 깔려 죽는 사람들은 &#039;실제로 짓밟혀&#039; 죽는 것보다는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산소 부족으로 먼저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 설계자들의 기본적 가정인 &#039;흐르는 물&#039;과 달리 출입구 주변으로 아치 형을 그리며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의 마찰력때문에 실제로는 아무도 밖으로 제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lt;BR&gt;&lt;BR&gt;재난시 개인이 경험하는 공포스러운, 그리고 무척 흔한 현상은 신체와 정신의 마비이다. 평소에 예민하고 민감한 편인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서 마비되는 현상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행동, 즉 화재시 산소 마스크를 뗀다든지 하는 행동들도 그 마비 현상의 일환이다. 실제 자신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있는 유일한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입 앞에 달린 마스크가 자신의 호흡을 방해하고 있다고 느끼는 현상으로, 사실은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진화학에 의하면 마비는 죽은 듯한 모습으로 포식자에게 매력도가 떨어지는 먹이로 보이기 위한 행동이라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다. 마치 최면과도 같은 이 현상은 큰 소리 정도로도 금새 깰 수 있다고 한다. &lt;BR&gt;&lt;BR&gt;영웅주의와 관련된 장에서는, 통계적 경향에 의해 영웅들은 주로 남성이며 노동계급의 사람들, 특히 타인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고 서술한다. 즉 남들에게 도움을 받기보다는 주는 쪽으로 프로그램화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중독되어 재난 현장마다 쫓아다니다가 피해를 일으킨 전 영웅들도 있다고 하니 사람 일이란 모를 일이다. &lt;BR&gt;&lt;BR&gt;그리 얇지 않은 이 책 내내, 저자는 재난 발생을 대비한 훈련과 두뇌 프로그래밍을 누누히 강조한다. 세계무역센터 테러 당시 계단이 어디로 연결되는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며, 옥상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직원은 50%밖에 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를 위해 옥상을 향해 올라갔다가 잠긴 문 앞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에 반해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을 받은 어린아이가 카트리나 재해 당시 해변가에 있던 사람들에게 경고해서 그 해변가에 있던 단 한 명도 죽지 않을 수 있었고, 쓰나미에 대비한 전통적인 지식을 구비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다들 높은 곳으로 대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남고 싶은가? 그럼 이 책을 읽고, 언제 있을지 모를 재난에 대비하라. 이것이 이 책의 포인트이다. &lt;BR&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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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새 달력을 받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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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21:54:05+09:00</updated>
    <published>2009-11-05T15:53:08+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새 달력이 나왔다.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과 휴가를 체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을 준비를 마음에서부터 했다. 벌써 다이어리들이 가득 나오기 시작하고, 올해도 여전히 몰스킨 다이어리는 예쁘다. G는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쓸 계획이라는데, 사업가가 아닌 이상 과연 그게 딱히 효용성이 있을까- 2년 전에 내가 비슷한 고민을 했었지, 흣흣. 아아 빨간 표지의 무지 몰스킨은 하나 갖고 싶다. 갖고 싶은 목록은 점점 늘어만 가네. 그냥 회사 다이어리로 만족할까나? 주말에는 팬시몰에 가서 다이어리 구경이라도 해야지.&lt;BR&gt;&lt;BR&gt;날짜가 되어서 그런가. 힘든 하루였다. &lt;BR&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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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메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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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레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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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4T23:48:54+09:00</updated>
    <published>2009-11-04T23:13:52+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러고 보니 독서일기를 간단하게라도 쓰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읽은 책 중 괜찮았던 몇 권에 대한 간략한 메모. &lt;BR&gt;&lt;BR&gt;- &amp;lt;일의 기쁨과 슬픔&amp;gt;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처음에 나왔던 물류 - 참치 어선을 좇아 가는 포토에세이가 너무 재미없어서 실망했었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재미가 있어진다. 여타 에세이들에 비해서 통찰력이나 쏠쏠한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척 가까이 있으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직업과 일들에 대해서 눈여겨 보게 되었다고 할까. 특히 비스킷 공장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비스킷의 모양과 타이포를 결정하며 어떻게 판매하고 광고하는가에 관한,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도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이야기들. &lt;BR&gt;카톨릭이 지배하던 유럽에서는 &#039;만족과 보수를 동시에 얻는 직업이란 존재할 수 없다&#039;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그대로 신봉되었고, 그 전통은 꽤 오래 지속되어 르네상스 시대, 좀더 세월이 흘러 1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실용적 기술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인문학 = 밥 굶는 학문이라는 개념이 상식에 가까운 현대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 하긴 생각해 보면, 조선의 과거제는 &#039;시를 잘 짓는 사람, 글을 잘 다루는 사람&#039;을 정부 관리로 뽑는 제도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사서삼경을 읽으면서 실용적 학문이나 인간을 다루는 법 등에 대해서도 익힐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긴 했지만. &lt;BR&gt;quote : &lt;FONT color=#d41a01&gt;예외가 규칙으로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lt;/FONT&gt; &lt;BR&gt;&lt;BR&gt;- &amp;lt;소녀 수집하는 노인&amp;gt;은 노벨상 수상감으로도 거론되고 있는 미국의 유명 여류 작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단편집인데,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도리스 레싱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즉,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 단편은 마크 트웨인(사무엘 클레멘스), 헤밍웨이, 에드가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과 헨리 제임스의 마지막 날들을 재구성한 줄거리에 그들의 문체와 스타일, 작품의 분위기를 오롯이 갖다가 패러디한 작품이기도 하다. 원서로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단편들인데, 특히 재미있었던 건 에드가 앨런 포를 다룬 &amp;lt;죽음 이후의 에드가 앨런 포 그리고 등대&amp;gt;였다.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이 단편은 &amp;lt;어셔 가의 몰락&amp;gt;을 비롯한 포의 괴기 단편들을 쏙 빼닮았다. 혹은 그 공간적 배경에서는 디포의 &amp;lt;로빈슨 크루소&amp;gt;, 그리고 그 작품을 재구성했던 존 쿳시의 &amp;lt;포 FOE&amp;gt;를 떠올리게도 했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혹은 로알드 달같은 &amp;lt;에밀리 디킨슨 레플리럭스&amp;gt;는 한 편의 SF 소설이었고, 왠지 촌스러우면서도 촉촉하고 따스한 느낌의 &amp;lt;성 바르톨로뮤 병원의 대문호&amp;gt;도 좋았다. 물론 표제작인 &amp;lt;소녀 수집하는 노인&amp;gt;도 예의 마크 트웨인의 그 찌질함(...)과 괴벽, 속좁음과 예민함이 둑둑 묻어난다. 헤밍웨이는 사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서 - 아, 난 이 중년 아저씨의 심각함이나 우울함을 이겨낼 수가 없다, 이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우울하다 못해 희극적이기까지 한 분위기와는 또 다른 것이다 - 대충 넘겼고. &lt;BR&gt;quote : &lt;FONT color=#d41a01&gt;이 지옥같은 곳에서 나는 한 쪽 끝에는 치아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배설을 위한 항문이 있는 창자 뭉치가 되어 버렸다.&lt;/FONT&gt; (아, 정말 앨런 포같은 문장이다;;)&lt;BR&gt;&lt;BR&gt;- 덕분에 21세기 스릴러 단편선에 있는 &amp;lt;옥수수 소녀, 어느 사랑 이야기&amp;gt;도 읽었다. 금발 머리카락과 옥수수 수염이라, 이야기는 끈적거리고 불쾌했지만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오츠의 장편도 읽어볼 계획인데, 난 사실 단편을 좋아하는 편이라 언제 잡게 될지는 모르겠다. &lt;BR&gt;&lt;BR&gt;- &amp;lt;런던을 속삭여 줄게&amp;gt;는 낯뜨겁고 민망한 제목과는 달리 내실있고 괜찮은 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문학과 영국 문화에 대해 맛보기를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필할만한 책.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정혜윤 PD의 최신 에세이로 문장마다마다 그녀가 읽었던 책에서 뽑아온 구절들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잘난 척 하거나 뽐내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고 - 설사 그렇다 해도 뭐 상관있나? - 진정으로 즐거워하면서 책을 읽고 감상하고, 런던을 보면서 자신의 뇌 속에 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정리하고 옮겨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팔팔거리며 살아있는 듯한 여행 에세이이다. 나도 비슷한 스타일의 여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하면서 가슴 뛰게 읽었다. &lt;BR&gt;특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스쳐 지나가지만 잘은 모르는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그리니치 천문대, 런던탑 등. 하지만 거기서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꽤 새로운 것들이다. 관광책자에 나온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 영국사와 영문학에 관심있다면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런던을 구경하는 기분에 젖을 수 있을 것 같다. &lt;BR&gt;quote : &lt;FONT color=#d41a01&gt;&#039;포클랜드 전쟁을 지켜 본 보르헤스는 빗을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두 대머리 남자의 싸움같다고 했다&#039;&lt;/FONT&gt; - 보르헤스 역시 최고. 흑흑. (ㅠ_ㅠ)b&lt;BR&gt;&lt;BR&gt;- &amp;lt;셜록 홈스의 과학&amp;gt;은 제목에 끌려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책이었는데, 쉽게 쓰여져 있고 법의학과 범죄심리학의 재미있는 부분만 조금씩 골라 다루고 있어서 후딱 읽힌다. 간단히 말하자면, 셜록 홈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범죄 분석 방법과 당시의 법의학 발전상에 대해 몇몇 에피소드 중심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책. 법의학 관련 책이나 독약 및 질병, 분장술 등에 대한 책은 많지 않지만 몇 권은 읽었기에 그리 새로운 점은 없었는데, 그래도 역시 홈스 시리즈와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쏠쏠하다. &lt;BR&gt;빅토리아 시대의 어린아이들의 참상에 관해서야 말할 것도 없지만 - 빅토리아 시대에는 아이들은 그저 덜 자라고 미숙한, &#039;인간이 덜된&#039; 존재들일 뿐이었으므로 엄격하게 때리고 훈육하여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널리 퍼진 신념이었다 - 당시의 구빈원에 대한 묘사는 꽤나 끔찍하다. 특히 빈민들은 시체 처리 등의 갖가지 궂은 일에 강제 동원되었고 그 댓가로 받는 것은 기름이 둥둥 뜬 더러운 국물 정도. 원래 먹는 것의 즐거움이랑은 담을 쌓은 민족인데다 육체의 즐거움에 엄격하고, 게다가 구빈원이기까지 했으니 그 실상이야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amp;lt;올리버 트위스트&amp;gt;가 여왕을 감동시켰다는 게 난 오히려 더 신기하던데. 더 심한 상태의 아이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을 뒤덮고 있지 않았을까?&lt;BR&gt;quote : &lt;FONT color=#d41a01&gt;어떤 시대이든 사후의 생은 종교의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지만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심령학은 1850년 경에나 태어났다.&lt;/FONT&gt; : 흠, 재미있는 현상인데, 심령학의 역사가 이렇게나 짧았다니 어떤 의미로 놀랍다. 점성술의 역사는 수메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lt;BR&gt;&lt;BR&gt;- &amp;lt;안남: 다다를 수 없는 나라&amp;gt;는, 최근 들어 소설을 부쩍 많이 읽게 된 위에 가장 최근에 얹힌 작품. 사실 오늘 퇴근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읽었다.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 베트남에서 온 왕자가 프랑스에서 외로이 홀로 죽어간 이후로 몇몇 가톨릭 선교사들이 베트남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들은 베트남의 생활에 젖어들게 되고, 어느새 프랑스의 혁명 및 갖가지 역사적 사건들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게 되며, 그들 또한 프랑스로부터 잊혀진다. 동료를 잃고, 선교라는 목적도 어느 정도 상실해 버린 채로, 그러나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처연하면서도 숭고하게 죽음을 맞는 도미니크 수도사와 카트린 수녀. &lt;BR&gt;베트남이라는, 낯설고도 어찌 보면 친근한 느낌의 공간적 배경때문일까- 아니면 간결하고 짧은 문장과 생략이 많은 사건들의 나열때문일까. 읽는 내내 &#039;물빛&#039;이 생각났다. 어찌 보면 투명하고, 어찌 보면 안에 무언가 있는 것 같고, 텅 빈 것 같지만 출렁거리며 움직이는 거대한 것이 보일 듯 말 듯 하는 그런 느낌.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라고 명명했지만 마지막에 거대한 사랑을 흠뻑 나누고 함께 죽음을 맞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미 &#039;다다랐다&#039;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차원을 뛰어넘은 숭고함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차분해지고 싶을 때, 혹은 명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lt;BR&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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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일의 기쁨과 슬픔 by 알랭 드 보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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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21:56:31+09:00</updated>
    <published>2009-11-04T21:53:00+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lt;BR&gt;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lt;BR&gt;&lt;BR&gt;-&lt;BR&gt;&#039;소명&#039;이라는 이 묘하고 불행한 용어는 중세에 기독교의 맥락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소명이란 예수의 가르침에 헌신하라는 명령과 갑자기 마주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시먼스의 말에 따르면, 이런 개념의 세속화된 변형이 현대까지 살아남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 삶의 의미가 이미 만들어진 결정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그러면 우리에게서 혼란, 질투, 후회의 느낌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 &lt;BR&gt;&lt;BR&gt;-&lt;BR&gt;그러자 시먼스의 이야기가 불편했던 것은 그것이 현대 세계의 성취와 관련된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지금보다 더 위계적이었던 사회에서는 개인의 운명이 대체로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 결정되었다. 성공과 실패가 나는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선언을 동반한 실력에 달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능력주의적인, 또 사회적 이동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지위는 자신감, 상상력,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을 설득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출세를 할 가능성때문에 금욕과 체념의 철학들은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비관주의적 자부심 때문에 인생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lt;BR&gt;&lt;BR&gt;-&lt;BR&gt;나는 내 주위의 엔지니어와 기술자, 야구 모자를 자주 자랑하고 세련되지 못한 유머를 구사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우주의 작동 방식을 터득한 이 새로운 주술사들에게로 나의 충성심이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얼마나 놀라운 생물들인가! 이들은 얼마나 놀라운 지평을 열어젖혔는가!&lt;BR&gt;&lt;BR&gt;-&lt;BR&gt;사실 여러 해의 노동의 결과를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lt;BR&gt;그러나 세상의 한 부분을 자기손으로 바꾸는 장인에게는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 보일런지.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루를 마치고 또는 한 생을 마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하나의 대상을 보며 그것이 그의 기술들의 안정된 저장소이고 그가 보낸 세월의 정확한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손에 쥐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무로 증발해버린 기획들로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군데 다 모여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lt;BR&gt;&lt;BR&gt;-&lt;BR&gt;위대한 예술 작품은 어떤 것을 꺠우치는 특성이 있다. &lt;BR&gt;&lt;BR&gt;-&lt;BR&gt;형태가 없는 고립된 관심사를 포착하여, 거기에 공동의 언어와 품위를 제공하는 문화 사업의 원형을 보는 듯했다. &lt;BR&gt;&lt;BR&gt;-&lt;BR&gt;물론 권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재구성되었을 뿐이다. 사장이 자신의 앞선 위치를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평직원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부하 직원들은 그가 그들과 운명을 공유하는 척할 때 보여주는 신실함에 감탄하지만, 그는 속으로는 자신이 보통 사람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때에만 다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lt;BR&gt;&lt;BR&gt;-&lt;BR&gt;이런 박람회의 인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시각이 현대적인 성취라는 개념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개념은 잘나가는 창업자들을 찬미하는 방식으로 부각되며, 여기에 그들만큼 성취하지 못한 동료들의 파산과 드물지 않은 자살에 관한 상대적 침묵이 결합된다. ... 옛날 사회는 포테이토칩에 미래를 한 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작정 강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평범한 삶은 실패한 삶과 똑같다는 식의 잔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lt;BR&gt;&lt;BR&gt;-&lt;BR&gt;비행기가 얼마나 빨리 나이를 먹는지 정말 놀랍다. ... 현대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죽은 뒤에도 기술과 사회가 계속 혁명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노동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다. &lt;BR&gt;&lt;BR&gt;-&lt;BR&gt;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 우리의 모든 기획의 궁극적인 운명을 직접 목격한다면, 우리는 바로 몸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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