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계부와 엄마 아래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애정 결핍에 시달렸으며 극단적인 성격으로 인해 주변에 사람을 오래 두지 못하던 다이안 포시의 이야기였다. 다이안 포시에 대해 처음 읽었던 건 대학 시절, 그것도 얼핏 스쳐 지나가던 고릴라 연구 학자의 이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의 다이안 포시에게서는 단순한 학자로서의 면모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운틴 고릴라에게 자신의 트라우마와 인간에게 못다 준 열정을 모두 다 바친- 어떻게 보면 가엾고 어떻게 보면 행복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더 강하게 읽힌다. 그녀는 루이스 리키와도 로맨틱한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사랑에 쉽게 빠졌고 불같은 연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모든 연애는 파국을 맞았다.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와 있는 가족은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지키지만 - 어미 고릴라를 비롯한 고릴라 가족을 몰살시키지 않는 한 새끼 고릴라를 훔쳐 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 그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매몰차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마운틴 고릴라는 다이안 포시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비지트라는 고릴라가 수렵꾼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넋을 잃고 우울함에 빠져 있던 다이안 포시 또한 자신이 평생을 지내며 숲의 여신과도 같이 군림했던 르완다의 숲 속 오막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명예와 재산은 그녀를 외면했던 생모와 계부에게 돌아갔다고.)
제인 구달은 이 세 명의 학자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으며 가장 많은 경제적, 정신적 - 그녀들의 스승 루이스 리키로부터조차도 - 지원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관찰 끝에 밝혀내기도 했으며 영장류 연구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그녀의 공적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그녀의 유명세에는 가장 인간의 행동을 닮아 있다는 침팬지를 연구한 덕분도 약간은 있었다고 사이 몽고메리는 적고 있다. 제인 구달은 어미 침팬지와 새끼 침팬지 사이의 애착과, 어미의 애정이 새끼에게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에 관해 논문을 발표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게도 되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 주장은 최근의 모성애 본능에 대한 회의설과는 배치되는 입장이기도 하다. 연구 결과에서 추출된 가설이지만 그녀의 주장은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이자 엄마인 여자들에게 또 하나의 죄책감과 짐을 얹어주는 모양이 될 테니까. 실제 구달은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회사로 향하는 어머니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도 한다. 마냥 침팬지를 사랑하는 성인과도 같아 보이는 제인 구달의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행동에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곰베의 침팬지 플로 및 그녀의 새끼들을 제외한 일반 침팬지들의 환경 개선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연구 주제인 침팬지들에 대해 연구 대상 이상의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녀의 연구를 성공으로 이끌긴 했지만, 그것이 종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변환하지는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내 자식이나 연인이 사랑스럽다고 해서 인류 전체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잘 몰랐던, 그리고 유인원 관련 서적에서도 가장 적게 다루어지고 있던 비루테 골디카스는 오랑우탄을 연구했던 여성 학자다. 오랑우탄은 무척 신기하게도, 군집을 이루어 생활하는 일이 거의 없고 기본적으로 개인적이며 핵가족 중심의 생활 양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책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여성 학자 세 명과 그들의 연구 대상이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비루테 골디카스 또한 무척 담담하고 개인적인 성격으로, (가족 내의 위치에 대해 신경 쓰는 고릴라와 비슷하게) 사회적 지위 및 리키의 수제자 서열 등에 무척이나 신경 쓰던 다이안 포시와는 달리 그런 류의 사회적 명성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비루테 골디카스를 다룬 부분에서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생활 양식에 대한 언급이 꽤 많이 나온다. 무척 세밀하게 조율되어 있는 사회적 예의라는 것이 인도네시아인의 생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며, 비루테가 그런 양식에 어떻게 적응하고 현지인을 남편으로 맞게까지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불행한 것으로 터부시하는 서양인의 관점과는 달리, 그들은 인생에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 포기하고 산다. 수많은 자연 재해와 죽음에 늘 노출되어 있는 그들로서는 죽음이나 소멸이 낯설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 식인 풍습도 있었던 곳이고, 그런 행위에 대해 거부감도 없다고 한다. 소위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절대적인 명제인가? 아니면 그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시작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 그리고 신의 손으로 빚어진 인간이라는 기독교의 관점 이후로 서양 문화의 근간이 된'하나의 관점'일 뿐인가. 그저 명제로서의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만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기준'이나 '한계'가 있어야 한다. 거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곧 어떤 것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내가 갖고 있는 관점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인간이 중요하고 동물도 중요하고, 죽음은 두려운 것이며 인생의 역경과 어려움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내 기본적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새삼 갖가지 의문을 갖게끔 했던 부분.
무척 재미있는 책이어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을 두어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Posted by 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