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은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 시리즈로 나온 모음집 중 하나이다. '일반 독자'의 자세로 당대 및 고전 영문학 작품 및 작가들에 대한 울프의 감상을 풀어 놓은 글들인데, 읽다 보면 흥미가 생기는 사람들이 몇몇 생긴다. 예전에 잠깐 읽다가 그만두었던 캐서린 맨스필드나 나를 끝없이 졸게 만들었던 존 던, 그리고 마가렛 캐번디시와 크리스티나 로제티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오랜만에 영문학사 책을 훑어봤다. 그러고 보니 노튼 앤솔로지를 아직도 사지 못했네. (영원히 못 살 듯 ㄱ- 나 전직 영문학도가 맞긴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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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자란 닥터 존슨이 암시한 바에 의하면 비평가나 학자와는 다르다. 교육도 형편없으며 자연으로부터 아무런 재능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이다. 일반 독자는 남들의 의견을 정정하거나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떠한 잡동사니라도 그것에서 어떤 전체를 스스로 창조하려는 본능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이다. [일반 독자]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명성이다, 라고 뉴카슬 공작부인인 마가렛 캐번디시는 썼다. ... 그녀에게는 새대가리만큼의 지능과 머리가 돈 듯한 기질과 함께 뭔가 고상하고 돈키호테처럼 희한하며 대담한 점이 있다. [뉴카슬 공작 부인]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위장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손함이 너무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통과 의식을 던져 버리고 마음에 맞는 한두 사람과 '가벼운 말'로 대화하는 것은 더운 방 안의 한 줄기 공기처럼 필수품이다.
... 그러나 그가 선택한 이 여인은 생기 없는 노예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도 있었다. 그녀는 초연했고, 고상함과 우아함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근엄한 비판가였으며, 분명히 말하는 습관과 불 같은 성미와 그녀가 생각하는 것을 겁없이 말하는 대담함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이었던 것 같다. [스위프트의 <스텔라에게 보내는 일기장>]

자기중심적이고 자기한계적인 작가들은 더 보편적이고 폭넓은 마음을 지닌 자들에게는 없는 어떤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인상은 자신들의 좁은 벽 사이에 꽉 담겨서 강하게 눌려 있다 그들 자신의 인상이 찍혀 있지 않은 것은 결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올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작가들에게 배우는 것이 거의 없으며, 그들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동화시키지 못한다.
... 적어도 샬롯 브론테는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그녀는 대신 불 같은 열정과 빠른 속도로 '내가 전통적인 과묵함의 외벽을 지나, 자신감의 문지방을 건너서 그들 가슴 속의 벽난롯가에 자리를 얻을 때까지' 자기만의 진정한 목소리로 계속 나아간다. 바로 그 장소에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그녀의 페이지를 밝히는 것은 가슴의 불에서 나오는 그 붉고 발작적인 광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정교하게 관찰한 인물들을 보려고 샬롯 브론테를 읽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그녀의 시때문에 그녀를 읽는다.

...우리 자신이 보았던 것과는 너무나 닮지 않은 남자와 여자에게 어떻게 진실과 통찰력과 감정의 섬세한 색조가 있을 수 있냐고 우리는 묻도록 허락된다. 그러나 질문을 하면서도 우리는 히스클리프에게서, 천재였던 누이가 보았을 오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런 인물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서 어떤 청년도 그만큼 더 생생한 존재를 지녔던 적은 없다. 두 명의 캐서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여인도 결코 그들 식으로 느낄 수 없고 그들 방식대로 행동할 수 없다고 우리는 말한다. 동시에 그들은 영국 소설에서 가장 사랑스런 여인들이다. 그것은 마치 에밀리 브론테가 인간에 대해 우리들이 아는 방편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대신 이 알 수 없는 투명함에다 너무나 격렬한 생명을 불어넣어서 그들로 하여금 이 현실을 초월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녀의 능력은 모든 능력 가운데 가장 희귀한 것이다. 그녀는 인생을 그 사실에 대한 의존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약간만 손을 대면 한 얼굴의 영혼을 보여줄 수가 있어서 어떤 신체도 필요 없게 만들었다. 광야에 대해 말함으로써 바람이 불고 천둥이 포효하게끔 만들었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우리는 자신과 홀로 있는 마음을, 관중이 지켜본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때때로 속기체로 써내려가거나, 외로울 떄 마음이 흔히 하듯이 둘로 나뉘어져서 자신과대화하고 있는 마음을 지켜보고 있는 것같이 느낀다. 캐더린 맨스필드가 쓴 캐더린 맨스필드. 그러나 조각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어떤 방향을 그것들에게 주기 시작한다.
... 그러나 단지 사물을 온당하게 그리고 민감하게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글쓰기란 충분하지 않다. 글은 무엇인가 표현되지 않은 것 위에 기초를 두어야 하며, 그리고 이 무엇이란 반드시 굳건하고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 이 일기는 다음 말로 끝난다. '만사가 다 좋다.' 그리고 석 달 후에 그녀는 죽었다.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책들을 읽는다는 것, 자기가 싫은 책들을 좋아하는 척 결코 가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 그것이 책읽기 기술에 대한 그의 유일한 가르침이었다. 나머지 모든 점은 스스로 배워야 한다. [레슬리 스티븐] - 레슬리 스티븐 경은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였다.

전형적인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은 달변을 사랑했고 용감한 신조어를 갈구했기 때문에 확대하고 종합하는 경향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은 넓은 풍경과, 영웅적인 미덕과, 영웅적인 투쟁을 하는, 또는 대개 숭고한 외향을 지닌 인물들을 사랑했다. 산문 작가들조차도 똑같이 과장, 확대하는 버릇이 있었다.
... 그러므로 베드포드 부인이 '신의 걸작'이고 그녀가 모든 시대의 모든 여인들을 능가한다는 시구를 읽을 때 우리는 존 단이 베드포드 부인에게 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즉, 시가 계급에 경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거리감은 정열보다는 이성을 고무하는 역할을 하였다. 단이 후원자를 칭송하는 시에서 보여주는 극도의 박식함과 미묘함은 후원자를 위해 글을 쓰는 한 가지 이유가 시인 자신의 독창성을 과장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3세기 이후의 단]

유행성 독감의 세균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어찌 천재의 근원균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백 년도 안 된다. 보즈웰은 한 인간의 생애가 책으로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거의 첫 번째의 작가일 것이다.
... 우리는 19세기 작가들이 모두 상당히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라는 것을, 그들의 생애를 통해 하나의 사실로 알고 있다. 대부분이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았다. ... 이제 우리는 질문한다. 물질적 번영과 그 지적 창조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전자가 후자로 이끄는가? 이에 대해 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 하지만 나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 19세기 작가들에게 인생은 여러 개의 밭으로 나누어진 풍경 같아 보였을 것이다. 각기 어느 정도 자기네만의 전통, 즉 고유의 태도, 고유의 말투, 고유의 의복, 고유의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평화덕분에 각 그룹은 그 번영에 속박되었다. ... 왜 19세기 작가들이 그렇게 많은 인물을 유형이 아닌 개개인으로 창조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그 사실이 도움을 주지 않는가? 계급을 구분하는 울타리를 그가 보지 않았기 떄문에 그 울타리 안에서 사는 인간들만을 본 것이 아닐까? ... 1914년에서조차도 우리는 작가가 19세기 내내 앉아서 인생을 보는 식으로 앉아 있는 것을 여전히 본다. 그리고 그 인생은 여전히 계층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태어난 그 계층을 가장 열심히 보고 있다. 계층은 여전히 안정되어 있어서 그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 탑을 파괴하거나 그곳에서 내려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 오히려 모두가 그 탑에 접근 가능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 하지만 그 탑 자체가, 그리고 그들이 탑에서 본 것이 얼마나 다른지! ... 즉 중산층 출신과 비싼 교육이라는 탑의 기울어가는 성향이다.

... 인생은 더 이상 울타리로 나뉘어 있지 않을 것이다. ... 계급 없고 탑 없는 세상에 관한 소설은 옛날 소설보다 더 나은 소설이 될 것이다 소설가들은 훨씬 더 흥미 있는 사람을 묘사할 것이다. ... 지금 영국은 이 두 세계 사이의 심연을 연결하기 위해 드디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의 증거가 여기에 하나 있다 - 바로 이 책. 이 책은 산 것도 아니고 빌린 것도 아니다. 이것은 공공 도서관에서 대출한 것이다. ... 우리는 문학을 이해하게끔 스스로를 가르쳐야만 한다. 돈이 더 이상 우리를 대신하여 사고를 해줄 수 없다. ...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덧붙이고 우리 스스로 공헌할 것이다. 그 일은 한층 더 어렵다. 그 일을 위해서도 우리는 역시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 문학은 어느 누구의 사유지가 아니고 문학은 공동의 장이다. 그것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지 않다. ... 이렇게 해서 영국 문학은 이 전쟁에서 살아남고 심연을 건널 것이다 - 만약 우리와 같은 평민과 국외자들이 그 나라를 우리의 나라로 만든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떻게 읽고 쓸지를 그리고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창조할지를 가르칠 수 있다면. [기울어가는 탑]

Posted by 레이

2009/11/13 16:33 2009/11/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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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꽤 옛날(?) 영화들인데, 그러고 보면 휴 그란트라는 배우도 참 연식이 오래되었구나. 은퇴한다 어쩐다 말도 많았고 엄청 큰 스캔들도 한 번 터졌고 했지만 놀라울만큼 오랫동안,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꾸준히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똑똑하고 지적인 배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웃기기까지 하니까 바랄 게 없지.(난 재미있는 혹은 웃기는 것에 지나치게 관대한 면이 있긴 하지만)

<비터 문 Bitter Moon>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화제작으로, 남자와 여자의 연애 과정에 있어서의, 그리고 프랑스 여자에 대한 갖가지 클리셰들이 몽땅 집합해 있는 것 같은 묘사들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성애와 욕망에의 탐닉에 대한 묘사, 중간에 끊을 수 없게 하는 몰입도 높은 플롯에 강렬한 캐릭터와 빠른 전개 등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이거 쓰고 보니 좀 닭살돋네)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가 여주인공 미미 역을 맡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못한다(...) 그래도 다행히 오스카 역의 피터 코요테, 나이즐 역의 휴 그란트, 피오나 역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상당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기에 여주인공의 연기가 슬쩍 묻히기도 하고, 사실 미미라는 캐릭터 자체는 대사 등보다는 반응과 행동의 극단성으로 캐리커처화된 캐릭터라서 어차피 비현실적 -_- 물론 그들이 경험하는 사랑의 시작과 중간, 끝과 구질구질한 연장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긴 하지만. 사랑의 시작은 다 다르지만 그 끝은 다들 비슷하다고 했던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오스카와 미미의 사랑이 그 극한에 다다랐을 때 오스카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던 미미의 모습. 정말 숨을 죽일만큼 요염하고 아름다웠다. 저런 여자를 거부할 남자가 있겠나, 하는 전형적인 표현이 즉각 떠오를만큼 매혹적이었다.

<스몰 타임 크룩스 Small Time Crooks>는 내가 우디 앨런의 작품을 택할 때 기대하는 것들이 가득한 작품으로, 시니컬하고 웃기고 시원시원한데다가 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정말 최고다! 졸부가 된 삼류 인생 전과자 부부 - 와 그 무리 - 가 상류층의 교양을 배우기 위해 매진하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인인 프렌치만 매진하는 거지만, 것도 재미있었고, 그 와중에 당연히 드러나는 상류층의 허세나 허위 의식, 교양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속은 텅 빈 속물성이 까발려지는 것도 어이없을만큼 웃겼다. 그런 상류층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휴 그란트가 맡은 미술품 중개인 데이빗. 특히 주목할 부분은, 윈저 담배 케이스를 뜻하지 않게 선물받았을 때의 그의 표정과 모습이다. 우와, 이 사람 정말 연기 잘 하는구나- 라고 절절히 느꼈달까. 그런데 교양없고 무식한 전과자라는 역할은 우디 앨런에게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는데- 그는 아무리 봐도 유약하고 말만 디립다 많은 지식인으로 보이니까. 그 큼직한 뿔테 하며 흐늘거리고 하얀 몸, 적은 머리숱까지. 그래도 부인 프렌치의 걸걸한 목소리나 큰 덩치와 대비되면서 더 웃겼으니 그걸로 만족. 프렌치의 사촌 메이 캐릭터도 재미있었고, 사실 레이의 무리들은 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프렌치의 쿠키는 한 번 먹어보고 싶더라. 추릅.

- 그러고 보면 내가 꾸준히 찾아보는 영화들은 휴 그란트 출연작들이 많더라. 난 사실 이 아저씨의 연기 스타일이나 발성, 제스처가 꽤 맘에 들기도 하고, 배우 자신도 지나치게 목에 힘을 주거나 진지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좋다. 한없이 가벼운 느낌, 그래도 늘 일정 수준의 질을 보장하는 작품과 연기를 보여주고. 그냥 편하다-라고 할까. 대단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고. 꽤 많이 봤다고 생각했건만 워낙 출연작이 많아서 다 보기도 힘들다. ㄱ-;;

Posted by 레이

2009/11/07 22:53 2009/11/0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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