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그러고 보니 독서일기를 간단하게라도 쓰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읽은 책 중 괜찮았던 몇 권에 대한 간략한 메모.

- <일의 기쁨과 슬픔>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처음에 나왔던 물류 - 참치 어선을 좇아 가는 포토에세이가 너무 재미없어서 실망했었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재미가 있어진다. 여타 에세이들에 비해서 통찰력이나 쏠쏠한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척 가까이 있으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직업과 일들에 대해서 눈여겨 보게 되었다고 할까. 특히 비스킷 공장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비스킷의 모양과 타이포를 결정하며 어떻게 판매하고 광고하는가에 관한,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도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이야기들.
카톨릭이 지배하던 유럽에서는 '만족과 보수를 동시에 얻는 직업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그대로 신봉되었고, 그 전통은 꽤 오래 지속되어 르네상스 시대, 좀더 세월이 흘러 1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실용적 기술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인문학 = 밥 굶는 학문이라는 개념이 상식에 가까운 현대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 하긴 생각해 보면, 조선의 과거제는 '시를 잘 짓는 사람, 글을 잘 다루는 사람'을 정부 관리로 뽑는 제도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사서삼경을 읽으면서 실용적 학문이나 인간을 다루는 법 등에 대해서도 익힐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긴 했지만.
quote : 예외가 규칙으로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 <소녀 수집하는 노인>은 노벨상 수상감으로도 거론되고 있는 미국의 유명 여류 작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단편집인데,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도리스 레싱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즉,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 단편은 마크 트웨인(사무엘 클레멘스), 헤밍웨이, 에드가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과 헨리 제임스의 마지막 날들을 재구성한 줄거리에 그들의 문체와 스타일, 작품의 분위기를 오롯이 갖다가 패러디한 작품이기도 하다. 원서로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단편들인데, 특히 재미있었던 건 에드가 앨런 포를 다룬 <죽음 이후의 에드가 앨런 포 그리고 등대>였다.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이 단편은 <어셔 가의 몰락>을 비롯한 포의 괴기 단편들을 쏙 빼닮았다. 혹은 그 공간적 배경에서는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그 작품을 재구성했던 존 쿳시의 <포 FOE>를 떠올리게도 했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혹은 로알드 달같은 <에밀리 디킨슨 레플리럭스>는 한 편의 SF 소설이었고, 왠지 촌스러우면서도 촉촉하고 따스한 느낌의 <성 바르톨로뮤 병원의 대문호>도 좋았다. 물론 표제작인 <소녀 수집하는 노인>도 예의 마크 트웨인의 그 찌질함(...)과 괴벽, 속좁음과 예민함이 둑둑 묻어난다. 헤밍웨이는 사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서 - 아, 난 이 중년 아저씨의 심각함이나 우울함을 이겨낼 수가 없다, 이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우울하다 못해 희극적이기까지 한 분위기와는 또 다른 것이다 - 대충 넘겼고.
quote : 이 지옥같은 곳에서 나는 한 쪽 끝에는 치아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배설을 위한 항문이 있는 창자 뭉치가 되어 버렸다. (아, 정말 앨런 포같은 문장이다;;)

- 덕분에 21세기 스릴러 단편선에 있는 <옥수수 소녀, 어느 사랑 이야기>도 읽었다. 금발 머리카락과 옥수수 수염이라, 이야기는 끈적거리고 불쾌했지만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오츠의 장편도 읽어볼 계획인데, 난 사실 단편을 좋아하는 편이라 언제 잡게 될지는 모르겠다.

- <런던을 속삭여 줄게>는 낯뜨겁고 민망한 제목과는 달리 내실있고 괜찮은 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문학과 영국 문화에 대해 맛보기를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필할만한 책.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정혜윤 PD의 최신 에세이로 문장마다마다 그녀가 읽었던 책에서 뽑아온 구절들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잘난 척 하거나 뽐내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고 - 설사 그렇다 해도 뭐 상관있나? - 진정으로 즐거워하면서 책을 읽고 감상하고, 런던을 보면서 자신의 뇌 속에 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정리하고 옮겨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팔팔거리며 살아있는 듯한 여행 에세이이다. 나도 비슷한 스타일의 여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하면서 가슴 뛰게 읽었다.
특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스쳐 지나가지만 잘은 모르는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그리니치 천문대, 런던탑 등. 하지만 거기서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꽤 새로운 것들이다. 관광책자에 나온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 영국사와 영문학에 관심있다면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런던을 구경하는 기분에 젖을 수 있을 것 같다.
quote : '포클랜드 전쟁을 지켜 본 보르헤스는 빗을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두 대머리 남자의 싸움같다고 했다' - 보르헤스 역시 최고. 흑흑. (ㅠ_ㅠ)b

- <셜록 홈스의 과학>은 제목에 끌려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책이었는데, 쉽게 쓰여져 있고 법의학과 범죄심리학의 재미있는 부분만 조금씩 골라 다루고 있어서 후딱 읽힌다. 간단히 말하자면, 셜록 홈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범죄 분석 방법과 당시의 법의학 발전상에 대해 몇몇 에피소드 중심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책. 법의학 관련 책이나 독약 및 질병, 분장술 등에 대한 책은 많지 않지만 몇 권은 읽었기에 그리 새로운 점은 없었는데, 그래도 역시 홈스 시리즈와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쏠쏠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어린아이들의 참상에 관해서야 말할 것도 없지만 - 빅토리아 시대에는 아이들은 그저 덜 자라고 미숙한, '인간이 덜된' 존재들일 뿐이었으므로 엄격하게 때리고 훈육하여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널리 퍼진 신념이었다 - 당시의 구빈원에 대한 묘사는 꽤나 끔찍하다. 특히 빈민들은 시체 처리 등의 갖가지 궂은 일에 강제 동원되었고 그 댓가로 받는 것은 기름이 둥둥 뜬 더러운 국물 정도. 원래 먹는 것의 즐거움이랑은 담을 쌓은 민족인데다 육체의 즐거움에 엄격하고, 게다가 구빈원이기까지 했으니 그 실상이야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여왕을 감동시켰다는 게 난 오히려 더 신기하던데. 더 심한 상태의 아이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을 뒤덮고 있지 않았을까?
quote : 어떤 시대이든 사후의 생은 종교의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지만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심령학은 1850년 경에나 태어났다. : 흠, 재미있는 현상인데, 심령학의 역사가 이렇게나 짧았다니 어떤 의미로 놀랍다. 점성술의 역사는 수메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 <안남: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최근 들어 소설을 부쩍 많이 읽게 된 위에 가장 최근에 얹힌 작품. 사실 오늘 퇴근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읽었다.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 베트남에서 온 왕자가 프랑스에서 외로이 홀로 죽어간 이후로 몇몇 가톨릭 선교사들이 베트남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들은 베트남의 생활에 젖어들게 되고, 어느새 프랑스의 혁명 및 갖가지 역사적 사건들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게 되며, 그들 또한 프랑스로부터 잊혀진다. 동료를 잃고, 선교라는 목적도 어느 정도 상실해 버린 채로, 그러나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처연하면서도 숭고하게 죽음을 맞는 도미니크 수도사와 카트린 수녀.
베트남이라는, 낯설고도 어찌 보면 친근한 느낌의 공간적 배경때문일까- 아니면 간결하고 짧은 문장과 생략이 많은 사건들의 나열때문일까. 읽는 내내 '물빛'이 생각났다. 어찌 보면 투명하고, 어찌 보면 안에 무언가 있는 것 같고, 텅 빈 것 같지만 출렁거리며 움직이는 거대한 것이 보일 듯 말 듯 하는 그런 느낌.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라고 명명했지만 마지막에 거대한 사랑을 흠뻑 나누고 함께 죽음을 맞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미 '다다랐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차원을 뛰어넘은 숭고함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차분해지고 싶을 때, 혹은 명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Posted by 레이

2009/11/04 23:13 2009/11/0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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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by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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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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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라는 이 묘하고 불행한 용어는 중세에 기독교의 맥락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소명이란 예수의 가르침에 헌신하라는 명령과 갑자기 마주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시먼스의 말에 따르면, 이런 개념의 세속화된 변형이 현대까지 살아남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 삶의 의미가 이미 만들어진 결정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그러면 우리에게서 혼란, 질투, 후회의 느낌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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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시먼스의 이야기가 불편했던 것은 그것이 현대 세계의 성취와 관련된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지금보다 더 위계적이었던 사회에서는 개인의 운명이 대체로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 결정되었다. 성공과 실패가 나는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선언을 동반한 실력에 달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능력주의적인, 또 사회적 이동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지위는 자신감, 상상력,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을 설득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출세를 할 가능성때문에 금욕과 체념의 철학들은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비관주의적 자부심 때문에 인생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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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주위의 엔지니어와 기술자, 야구 모자를 자주 자랑하고 세련되지 못한 유머를 구사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우주의 작동 방식을 터득한 이 새로운 주술사들에게로 나의 충성심이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얼마나 놀라운 생물들인가! 이들은 얼마나 놀라운 지평을 열어젖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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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러 해의 노동의 결과를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한 부분을 자기손으로 바꾸는 장인에게는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 보일런지.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루를 마치고 또는 한 생을 마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하나의 대상을 보며 그것이 그의 기술들의 안정된 저장소이고 그가 보낸 세월의 정확한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손에 쥐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무로 증발해버린 기획들로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군데 다 모여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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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 작품은 어떤 것을 꺠우치는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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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없는 고립된 관심사를 포착하여, 거기에 공동의 언어와 품위를 제공하는 문화 사업의 원형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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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권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재구성되었을 뿐이다. 사장이 자신의 앞선 위치를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평직원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부하 직원들은 그가 그들과 운명을 공유하는 척할 때 보여주는 신실함에 감탄하지만, 그는 속으로는 자신이 보통 사람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때에만 다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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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박람회의 인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시각이 현대적인 성취라는 개념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개념은 잘나가는 창업자들을 찬미하는 방식으로 부각되며, 여기에 그들만큼 성취하지 못한 동료들의 파산과 드물지 않은 자살에 관한 상대적 침묵이 결합된다. ... 옛날 사회는 포테이토칩에 미래를 한 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작정 강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평범한 삶은 실패한 삶과 똑같다는 식의 잔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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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얼마나 빨리 나이를 먹는지 정말 놀랍다. ... 현대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죽은 뒤에도 기술과 사회가 계속 혁명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노동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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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 우리의 모든 기획의 궁극적인 운명을 직접 목격한다면, 우리는 바로 몸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Posted by 레이

2009/11/04 21:53 2009/11/0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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